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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대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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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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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 한자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총 5582개의 성씨가 있다. ‘김(金)’씨 성을 가진 사람이 1069만명(전체 인구의 21.5%)으로 가장 많았고, ‘이(李)’씨 성과 ‘박(朴)’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각각 14.7%(731만명)와 8.4%(419만명)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세 성씨를 포함해 ‘최(崔)’씨 233만명, ‘정(鄭)’씨 215만명 등 10대 성씨를 가진 사람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63.9%를 차지하고 있다. 성씨는 어머니의 핏줄을 뜻했던 ‘姓(성)’이라는 말과 자신의 조상이나 출신 지역을 뜻했던 ‘氏(씨)’가 합쳐진 말이다. 한국인이 성씨를 갖게 된 것은 삼국시대라고 보는 관점이 있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기원전 69년 신라를 세운 혁거세가 박처럼 생긴 둥근 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박씨 성을 갖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고, 유리왕이 초기 신라를 이루던 6개 촌의 촌장들에게 각각 이(李), 정(鄭), 최(崔), 손(孫), 배(裵), 설(薛)이라는 성을 내려주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 초기에는 성씨가 없었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인데 삼국시대에 성씨와 한자식 이름을 사용한 것은 고구려 장수왕, 백제 근초고왕, 신라는 진흥왕 때부터로 추정되며,  이때부터 각자의 성씨를 정한 왕족과 귀족이 생겨났고, 고려 때 쓰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삼국시대 왕족 계보를 바탕으로 삼국시대 초기 인물들에게 한자식 성과 이름을 붙여준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나라에 성씨가 생기게된 계기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토성분정(土姓分定)이라는 정책을 시행한 것인데, 지방 호족 세력의 도움을 받아 고려를 세우고 왕이 된 왕건은 성씨가 없던 지방 세력가들에게 각자 다스릴 땅을 정해주고 성씨를 내려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토성분정 정책이다. 이때부터 성씨의 출신 지역을 뜻하는 ‘본관’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안동 권(權)씨는 안동에 세력을 차지한 권씨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왕건은 당시 복주 지역을 지키던 김행이라는 세력가에게 권씨라는 성을 내려주고, 복주 지역의 이름을 안동으로 정했다고 한다.

LG그룹 이끌고 용퇴한 권영수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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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 부회장

안동 권씨 대종원 회장단의 권영수(34대손) 부회장은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 서울대 경영학과, KAIST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여 1979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하여 30년 가까이 금융과 재경 부분을 맡은 재무통이다. 2006년 재경부문장 사장을 거쳐 2007년 LG필립스 LCD 대표이사 사장, 2008년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 2012년 LG화학 전지사업본부 배터리 사업을 책임졌다. 구광모 LG회장 체제 아래서 권 부회장은 70년 LG그룹 역사상 구씨 일가 역대 총수 후계자를 제외하고는 선대에서도 보기 드문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권 부회장은 구광모 회장을 보좌해 계열사 전반의 현안을 조율하고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구체화하고 그룹의 중장기 투자와 운영방침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용퇴 후 여러 굴지의 대기업을 이끌 적임자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새로운 소속사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전무후무한 아티스트, 지드래곤 권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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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래곤 권지용

권지용(예명 : 지드래곤, 32세, 39세손)은 자타가 공인하는 K팝 최고 솔로 아티스트이다. 2001년 자신의 이름을 딴 ‘G-Dragon’으로 가요계에 존재감을 알린 이후 연습생 기간을 거쳐 2006년 5인조 힙합 아이돌 그룹 빅뱅의 일원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지드래곤은 빅뱅의 리더로 팀을 이끌며 ‘거짓말’, ‘하루하루’, ‘마지막 인사’, ‘착한 사람’, ‘붉은 노을’, Number 1′, ‘배드 보이’, ‘뱅뱅뱅’, ‘베베’, ‘루저’,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 ‘에라 모르겠다’, ‘판타스틱 베이비’, ‘라스트 댄스’, ‘IF YOU’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해내며 K팝을 대표하는 아이돌로 성장했다. 지드래곤은 솔로로도 활동을 병행, ‘디스 러브’, ‘하트브레이커’, ‘크레용’, ‘원 오브 어 카인드’, ”굿 보이’, ‘무제’, ‘개소리’ 등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곡 뿐만 아니라 빅뱅을 비롯해 동료 뮤지션들의 곡들도 피쳐링 또는 프로듀싱으로 참여해 작곡가로서도 엄청난 성과를 이뤄냈다. 지드래곤은 일찌감치 솔로 아티스트로서 인지도를 끌어올리며 입지를 넓히고 굳혀갔다. 어린 시절 태양과 YG패밀리의 막내로 입성해 래퍼로서 실력을 키워나갔고, 프로듀싱 능력은 물론 믹스테이프, 음원, LP, CD 등 정해진 포맷을 규정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뽐내는 모습을 보였다. 지드래곤은 심지어 USB로 완성한 ‘권지용’이라는 앨범으로 음반 시장에 새로운 메시지를 외치기도 했다. 발매 기준, 새 앨범 ‘권지용’은 무려 39개국 아이튠즈 앨범차트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국내 아티스트 사상 최다 기록으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지드래곤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직 지드래곤만이 가능한 업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지드래곤은 새로운 소속사인 갤럭시코퍼레이션에서 혁신적인 미래를 준비 중이다.

역사가 된 스타 셰프, ‘에드워드 권’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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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권

대한민국 대표 요리사 ‘에드워드 권’ 권영민(48세, 34세손), 그는 1971년 2월 10일생으로 북평고등학교 졸업해 영동전문대학 호텔 조리학과 졸업했다. 그 후, 서울 리츠칼튼 호텔, 미국 리츠칼튼 샌프란시스코, 중국 텐진 쉐라톤 그랜드 호텔, 두바이 페어몬트 호텔을 거쳐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 헤드셰프가 되었다. 현재는 서울현대전문학교 외식산업학부 학장으로, (주)이케이푸드 대표이사 겸 LAB XXIV 오너 셰프를 맡고 있다.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난 권영민은 신학대에 들어가 신부가 되려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 신부에 대한 꿈을 접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그러나 생면무지인 서울에서 그가 처음 맞닥뜨린 것은 굶주림이었다. 그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경양식집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는 `시골 소년’에게 맡겨진 일은 단순한 홀 서빙이었다. 그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주방 보조 업무까지 맡았고 거기서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당시 그 촌뜨기 소년이 홀 서빙만 계속 했더라면, 아마 지금의 에드워드 권은 없었을 것이다. 에드워드라는 이름은 미국에서 처음 일할 당시 붙여진 것이며 어느날 출근해보니 근무표에 자기 이름 대신 에드워드가 적혀 있어서 순간적으로 해고된 줄 알았으나, 실은 그를 편하게 부르기 위해 그냥 당시 주방 스태프 중에 없는 이름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적어 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닉네임을 에드워드 권이라고 했고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에드워드권에게 요리란 삶 자체이자 생존의 도구였다. 때문에 강남 한복판에 자리잡은 그의 레스트랑은 단순히 요리를 파는 곳이 아니라 손님들과 치열하게 마주하는 공간이다. 셰프의 길에 들어선 것도 삶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에드워드 권은 연간 7~8회 해외 행사에 마스터 셰프로 초청받아 한국 요리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해외 행사에 설 때마다 태극마크를 단 기분이다. 요리계의 박찬호, 박지성, 김연아인 셈이다. 한국인 셰프 최초로 프랑스 엘리제궁 초청을 받은 에드워드 권. 더불어 그가 운영하는 랩24까지 3년 연속 ‘라 리스트2019’ 1000대 레스토랑에 선정되었다.

삼성전자 회장 출신 반도체 레전드 권오현 삼성전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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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삼성전자 고문

삼성반도체의 전설로 불리는 권오현 삼성전자고문은 1952년 10월 1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기공학 석사학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공과대학원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서 일하다 미국 삼성반도체연구소에 연구원으로 합류했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연구원, 반도체부문 이사, 메모리본부 상무이사, 시스템LSI본부 개발실장을 거쳤다. 시스템LSI사업부장으로 발탁된 뒤 반도체사업부 사장, DS사업총괄 사장을 거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겸임하다 삼성전자의 경영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모든 보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었을 때 사실상 총수 자리를 대신한 바도 있다. 그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 역사의 산증인이자 한국 반도체산업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일등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장으로 대표이사를 맡던 시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사업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대규모 투자 결정을 주도하며 삼성전자가 2017년 역대 최대 실적을 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사업을 두루 갖춘 반도체 전문가로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들을 추격하는데 앞장섰다. 권오현 고문은 삼성전자의 세계 최초 64Mb D램 개발의 주역이며 이후에도 다양한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의 주역으로 자리잡아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글로벌 반도체기업으로 키우는데 큰 공헌을 했다.

전 대구광역시 시장 권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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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구시장 권영진

권영진은 전 대구광역시 시장이다. 1962년 12월 10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에서 태어났다. 중학교까지는 안동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다 큰 도시로 가서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대구로 진학하게 됐다. 대구 청구고등학교와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나라당 미래연대 공동대표로서 천막당사 운동을 주도하고 한나라당 혁신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서울시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당선을 도와 43세에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일했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노원구 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4년 대구광역시장 후보로 6.4 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경북고등학교를 나오지 않고 관료 출신이 아닌 사람 가운데 처음으로 대구시장에 당선됐다. 2018년 6월 재선에 성공해 두 번째 시장 임기를 마쳤다. 현재 새로운 정치역정을 준비 중이다

‘한인최초 영국 지방선거 당선’ 권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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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정치인 권보라

2018년 5월 3일 영국 지방선거에서 한인 권보라씨(39)가 구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영국에서 한인출신이 정치에 진출해 구의원으로 당선한 것은 권보라씨가 처음이다. 권씨는 런던 해머스미스 자치구 레이번스코트 파크 워드에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우리나라 행정구역으로 치면 동에 해당한다. 영국은 인구수에 따라 워드별로 2명 내지 3명의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다. 권씨는 한인 밀집 지역과 떨어진 런던 서쪽의 해머스미스에서 처음 출마해 당선됐다. 권씨는 조용하고, 남성에게 순종적이고, 목소리 내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되던 ‘아시아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지방선거에 당선되었다. 항상 스스로가 그런 고정관념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말해왔지만, 사람들은 ‘아시아 여성이니까, 그럴 것이다.’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확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남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보라씨는 부모님이 식당을 운영해 2010년부터 해머스미스에서 살고 있다. 지난해까지 경상북도 해외자문위원협의회장을 지낸 권석하씨에 따르면 딸 권보라씨는 “정치인을 많이 배출한 명문 런던정경대(LSE)를 졸업한 후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아 노동당에 입당한 뒤 각종 선거와 정치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면서 “동네에 대한 애정과 지역 발전을 위해 지방선거 출마했으며, 특히 지역 내 주택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샐러리맨의 신화 현대중공업지주 권오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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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

현대 중공업 사원으로 입사한지 41년 만에 그룹을 총괄하는 회장 자리까지 오른 권오갑 회장은 조선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951년 2월 10일 태어나 한국 외국어 대학교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했다. 현대중공업이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해 글로벌 1위 조선사에 오를때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정주영 창업주 아래에서 일했으며, 전문경영인으로써 현대중공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런던사무소 외자구매부 부장, 서울사무소 전무를 거쳐 현대중공업 부사장과 울산현대호랑이축구단 대표를 지냈다. 현대중공업이 아부다비 국제석유투자회사로부터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면서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역임했다. 조선업황이 악화하면서 현대중공업이 사상 최대규모의 영업손실을 내자 현대중공업으로 돌아왔다. 현대중공업 부회장으로 승진했다가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조선업계 구원투수로도 불리는 권회장은 다양한 미래사업 발굴과 사업 재편을 통해 최첨단 조선, 에너지 그룹으로 현대중공업을 변신시키고 있다.

‘한국 테니스 유망주’ 권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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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는 대한민국의 테니스 선수이다. 1997년 12월 2일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으나, 테니스를 좋아하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테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테니스 선수의 길을 걸어 중1 때 무릎부상으로 7개월간 쉬기도 했으나 재활을 거쳐 복귀하였다. 주니어 시절에는 주니어 국제대회에서 몇 차례 우승을 차지하고 인지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국내의 일반적인 유망주들과는 달리 주니어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도 비교적 일찍 프로로 들어섰다. 프로 데뷔는 2013년 부산 오픈 챌린저 대회 예선에 와일드 카드를 받고 출전했던 것이지만, 2014년 몇 번의 와일드카드를 받고 한국 퓨처스 대회들에 출전하는 것을 거쳐 2015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주니어 이후 본격적으로 프로에 데뷔하게 된다. 권순우 선수는 2019년 4월 마지막 주부터 5월 둘째 주까지 3주에 걸친 한국 챌린저 투어 시리즈가 마무리되면서 서울 오픈 우승, 부산 오픈 32강, 광주 오픈 4강에 진출한 성적을 기록해 가장 많은 포인트를 획득한 선수가 되었다. 아주 오랜 기간동안 한국 1위를 차지하고 있던 정현을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게임계의 큰 손’ 스마일게이트 권혁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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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빈 스마일게이트 대표

권혁빈은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의 대표이다. 1973년생인 권혁빈 대표는 전주 상산고,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산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어릴 때부터 과학자를 꿈꾸던 그는 학창 시절을 보내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전자공학과와 함께 부전공으로 컴퓨터 공학을 이수 했고, 대학교 졸업 이후 바로 창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첫 시작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e러닝 분야였다. ‘포씨소프트’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교육 콘텐츠 제작 시스템인 ‘액티브 튜터’를 개발해 시장에 선보였으며 나름의 성과를 보이기는 했지만, 권혁빈 대표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e러닝 시장에서 비전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권혁빈 대표가 바라본 시장은 온라인 게임이었다. 2002년 현재까지 운영중인 게임 기업 스마일게이트를 창업하고, 본격적으로 게임 사업을 시작했다. 스마일 게이트에서는 피쳐폰 기반의 모바일 게임 ‘헤드샷 온라인’을 개발했지만 당시 동일한 장르의 다른 인기게임들에 밀려 묻히고 만다. 이후 다시 내놓은 게임도 ‘크로스파이어’라는 1인칭 슈팅게임이었지만 국내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권혁빈 대표는 국내시장의 대안으로 중국을 선택했고, 주 무대를 본격적으로 해외로 옮기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중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지 서비스를 위한 철저한 조사와 결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전략을 펼쳤고, 많은 노력 끝에 중국에서 폭발적인 실적을 기록했다. 중국에서의 성공을 통해 권혁빈 회장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인물로 대기업 수장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부를 축적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전 세계 억만장자 가운데 한국에서 4번째로 꼽히고 있는 게임업계의 입지적인 인물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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